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다
by 신채호
한국의 역사학자이자 사상가인 신채호 선생은 말했다. 그가 본 역사는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투쟁하면서 쓰인 기록이라고. 이는 단순히 역사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한편 서양에서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헤로도토스는 그가 고대 그리스어로 지은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훗날 인간의 업적이 잊히거나 그리스인과 비그리스인 모두의 위대하고 경이로운 행적이 기록되지 않고 지나가는 일이 없도록 이 역사서를 썼습니다.' 이와 달리 엄밀한 사료 비판에 기초를 둔 근대사학을 확립한 독일의 레오폴트 폰 랑케는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를 밝혀내는 것이 역사가의 사명이라 말하면서 주관적인 관점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강조했다. 이런 상반되는 견해를 통해 역사가의 역사관에 따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과거에 있었던 사실’과 ‘조사되어 기록된 과거’라는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역사라는 말은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된 사실’이라는 두 측면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이러한 정의는 역사를 뜻하는 용어의 어원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어 역사 안에서 유래된 영어 역사(history)는 '알다', '보다', '찾아서 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어 역사 아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저서에서 사용했던 말로 조사와 탐문을 통해서 얻은 지식이라는 뜻이다. 역사와의 앞부분인 '히스톤-'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 문학의 기초가 되는 서사시의 저자로 알려주신 호메로스의 시나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비문 등에서도 발견되는데 현자나 판관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된다. 또 이오니아 그리스어의 파생어로서 '조사하다'의 뜻을 지닌 단어도 비슷하게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헬레니즘 문명에 이르기까지 퍼져나가게 되었다. 또한 잉글랜드의 철학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이 자연사에 대해 쓸 때도 역사 아를 사용했는데 시공간에 따른 어떤 사물에 대한 지식이라는 의미로 썼다. 이외에도 영어에서도 사건들의 연관이나 이야기를 뜻하는 말로 '이야기'라는 의미에 초점을 두고 쓰이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 사건의 기록이라는 의미로 좁아졌다.
어원을 통해서도 역할이 드러나는 역사가는 관찰자인 동시에 참여자이기에 각자가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를 염두하고 역사서를 저술한다. 따라서 역사가는 과거의 기록물을 따라서 파악되는 것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여야 하지만, 그 해석이나 기술함에 있어서는 개인의 역사관과 같은 주관적인 면모가 크게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역사에 대한 이해는 더욱 더 엄격한 과학적 인식을 토대로 해야 하고, 지나친 자의적인 해석이나 서술은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기 때문에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 전통적으로 역사가들은 처음에 기념물이나 그림 혹은 비문 같은 자료들을 이용해서 연구하면서 과거의 사건을 기록하거나 말로 전하면서 역사적인 의문점에 답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글로 쓰인 기록문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선사와 역사가 구분이 된다.
역사란 인류와 사회의 변천사이자 과거의 시대에 대해 남긴 기록물이며 또한 이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를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넓은 의미로 사물 혹은 사건의 자취를 총망라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역사에 있어 과거의 연속된 사건들을 분석하고 인과 관계를 밝혀내며 분석하는 연구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에 물질이나 동식물 등의 흔적을 찾아내는 고고학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양상을 사회와 연관 지어 설명하는 사회학 등의 학문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고고학은 땅에 묻혀있던 유적지나 유물이 발굴되었을 때 역사 연구에 유용하게 쓰인다. 이런 고고학적 발견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이야기 자료 등이 쓰인다. 하지만 고고학은 또 역사학과 별개로 고유한 방법론이나 접근론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단지 고고학이 사료의 틈을 보충하는 것은 아니다. 고고학의 한 가지로서 역사 고고학은 때때로 현존하는 사료와 상반되는 결론을 내기도 한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모든 역사적 환경을 연구함으로써 사료와 발굴 자료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이외에도 왜 역사적 사건들이 발생했는지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기에 역사학자들은 지리학을 이용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 사건이 발생한 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날씨나 주변 생태 그리고 물의 공급 정도 등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 예로 고대 이집트인들이 왜 그렇게 엄청난 문명을 일으킬 수 있었고,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집트의 지리학이 꼭 필요하다. 나일강 주변에 세워진 이집트 문명은 위치적 특성상 매년 강물이 범람했고, 그 둑에 흙이 쌓였다. 비옥해진 토양은 충분한 곡식을 제공했다. 먹는 문제가 해결되니 자연스럽게 거대한 문명을 이룩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다양한 직업들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고, 그 문명의 시초의 뿌리에 이런 지리적인 요인들이 숨어있는 것이다.
인문학의 범주로 분류되기도 하는 역사 연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이나 사회적 행동을 탐구하는 사회과학으로도 본다. 어떤 역사가들은 역사가 두 범주가 아니라 한 곳에 포함돼야 한다고 강한 주장을 펼치기도 하지만, 역사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통합하며 이어주는 다리라고 볼 수 있다. 20세기 프랑스 출신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이 경제학, 인류학, 지리학과 같은 다른 분야의 효과를 고려해서 연구를 하면서 역사 연구의 혁명을 일으키기도 했던 역사는 현대에 올수록 점점 사회과학으로 분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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